남영: 안녕 언니!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채송: 나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어. 졸업을 앞둔 시즌이라서 사실 생각도 되게 많고 정신도 없고 그런 상황인데 남영이랑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해소를 할 수 있는 부분들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감을 안고 대화에 참여를 하게 되었어. 네가 얘기했듯이 지난 주말에 콜롬비아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어. 나는 항상 공연 후 우울증을 느끼는데, 이런 것과 졸업을 앞두고 불안이 합쳐져서 되게 오묘한 우울과 불안을 함께 맞이하고 있는 중이야. 남영이는 잘 지내니?

남영: 나는 지금 4학년이고 나도 졸전이 12월이어서 졸전 끝나고 어떻게 해야하나~하는 상황이야.

채송: 남영 작업도 되게 많이 변한 것 같아. 내가 알던 중학교 때 남영이는 아직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가장 최근에 만났을 2년 전쯤 "퍼포먼스를 관심이 있다." 이런 얘기를 했었던 기억이 나. 남영이가 공유해 준 링크를 통해서 봤을 때는 되게 퍼포먼스적인 작업이 많이 영글어있는 느낌을 받았거든. 되게 많은 많은 일들을 겪고 많은 영감을 얻고 그랬을 것 같아.

남영: 어 맞아. 재작년부터 퍼포먼스에 관심이 생겨 조금씩 조금씩 작업을 진행을 하고 있는 중이고 학교가 끝나고 외국으로 대학원을 갈까 고민 중에 있어.

채송: 그렇구나 그러면은 퍼포먼스 쪽으로 대학원을 생각하는 거야?

남영: 응. 근데 완전히 퍼포먼스라기보다는 조형 예술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긴 해.

채송: 그러면 시카고 미술 대학의 퍼포먼스 학과가 잘 맞을 것 같아.

남영: 언니가 뉴욕에서 살고 있고 거기 대학원을 다니고 있으니까 그곳의 씬이나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했어.

채송: 내가 얘기한 시카고 미술 대학원은 사실 내가 마지막까지 되게 고민을 했던 학교인데, 거기에 performance라는 msa가 있어. 남영이가 하는 행위 예술과 같은 곳이거든. 정말 자유로운 학교이기 때문에 원하는 거 다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되게 부러워했던 점은 다른 학교랑 달리 퍼포먼스를 하는 교수님들이 되게 많아서 행위 예술을 중점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고, 전문적인 교육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점이 있어서 궁금하다면 고민해 봐.

남영: 그렇게 나도 고민했던 지점이 작업은 그쪽으로 가고 싶은데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는 그런 쪽으로 하는 교수님들이 아예 없어서 그래서 아예 방향을 틀어서 외국으로 나가볼까라는 생각 고민을 하고 있어. 조금 젊은 나이에 이른 나이에 뭔가 외국을 나가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많이 들기는 해.

채송: 나도 이걸 좀 버려야 되는데 남영과 내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잖아. 내 동기들 중에는 나보다 14살 많은 분들도 계신데 자꾸 이렇게 어렸을 때 남영이를 선생님으로 만났으니까 자꾸 막 기특해하고 그래.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것들을 오늘로서 탈피를 해보자.

남영: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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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요즘은 어디에서 에너지를 얻어?

채송: 내 바이오에도 그렇고 ‘화’에 대한 얘기를 되게 많이 하는 것 같아. anger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은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르겠는 거대한 분노가 있어. 그 분노가 작업을 통해 좀 풀어나가는 것 같기는 해. 일제강점기라든지 아니면 그냥 조상 ancestor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거에서 풀어나갈 때도 있어. 특히 나는 내 부모님 세대가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운동을 정말 가까이서 하셨던 분들이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좀 화가 있는 것 같아. 내가 그냥 나라는 공간, 나라는 conception 자체가 그런 것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어.
게다가 나는 나라 간의 경험을 많이 했잖아. 이방인의 경험들도 쌓이고 나이가 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나의 몸 때문에 느끼는 차별이라든지 억압이라든지에 대해서 이제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에서 동력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
사실 화만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이 되게 많거든. 나는 화가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공동체를 꾸리고 싶고, 교감을 하고 싶고 그런 마음이 더 커. 화 그 이후에 남는 것들, 우리가 함께 해나가야 하는 방향들에 시간을 갖고 살피는 것이 나한테는 되게 관심이 있는 부분이야.
요약을 하자면 예전에는 화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공동체를 꾸리는 것에 되게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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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그러면 언니가 지금 꾸리려고 하는 어떤 구체적인 공동체가 있어?

채송: 예전에는 이주하는 여성의 몸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했었어. 그 당시에 내가 얘기를 질문하던 거를 생각하면 계속해서 변화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질문을 했었던 것 같고 특히나 여성이라는 몸에서 오는 당사자성에 대해서 좀 고민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여기서 여성이라는 거는 진짜 정말 gender theory에 따라서 정말 천차 만별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내가 궁금했던 여성성이라는 거는 사실 이분법적인 그런 거를 고민했던 건 아니거든. 그래서 그래서 타고 나는 것 말고 어떻게 보면 행위에 대한 얘기였던 것 같아. 직선일 수 없는 사람들. 언제나 내 삶이 곡선일 수밖에 없는 형태 그런 것들 (웃음) 얘기를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랬어.
내가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었지 아, 공동체가 누구냐고 그래서 지금도 같은 화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되게 끌리는 것 같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 좀 작업에 중점을 두고 있어. 영어로는 intergenerational trauma 라고 하는데 그걸 한국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거든. 세대간의 트라우마? 세대가 거듭할수록 survive 식으로 했었던 것들이 그 다음 세대한테는 힘으로 되물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내가 감내해야 했던 고통들이 또 대물림이 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이제 한국말로는 한이라고 또 얘기하지만. 그런 것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마음이 가는 것 같아 그냥 생각하고 그럴 거 없이 그냥 그런 사람들 좀 주변에 보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까 그렇게 운동체가 꾸려나가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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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언니가 화에 대한 얘기를 했잖아. 난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고 내가 다니는 학교가 엄청 보수적인 학교야. 예전부터 시스템적인 문제나 학생,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것들에 항상 화를 내며 살았어. 또 언니가 민주화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 지난 주에 문화인류학 수업에서 68운동에 대해서 배웠는데, 68운동 때 대학생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했던 운동으로 대학교 등록금이 면제가 된다거나 대학의 서열이 없어지는 것들을 보면서 한국이 더 씁쓸해지는 거야. 대학이 기업처럼 되어버린 한국은 왜 이럴까 이런 생각도 들었어. 86세대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그래도 우리나라가 정치적인 민주화나 경제적인 민주화가 많이 됐지만 문화적인 민주화는 아직 멀었고 권력적이고 보수적인 것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슬퍼. 난 요즘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살아.

채송: 맞아. 내가 anger에 대해서 예전 세대의 갈등과 힘듦만 얘기했지만, 사실 또 기득권이 되시지 못한 분들의 그런 아픔들과 여전히 얘기되지 않고 있는 국가 폭력의 피해자분들, 우리에서 제외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라든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제는 얘기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는 생각과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어. 사실 답답하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좀 안타까움에 가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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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언니가 가장 최근에 한 마지막 쇼가 어떤 쇼였는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어.

채송: 이번 주제가 세익스피어 작품이었어. 아까 얘기한 기득권에 화가 가득 차 있는 나로서는 되게 불만이 많았어.
그래서 내가 왜 세익스피어에 화가 났나를 살펴보다 보니까 어릴 때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세익스피어에 대해서 화가 나본 적이 없어. 나는 오히려 세엑스피어 작품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인데도 되게 많은 감동이 있었거든. 그리고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신파라고 얘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되게 재미있고 되게 푹 빠져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르지 생각해봤어.
이 화는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이런 고민을 좀 해봤는데 사실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화라보다는 어째서 셰익스피어만이 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producing 되는 playwriter가 되었는가 에 대한 시스템에 화가 있더라고.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면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세익스피어가 유일하지 않다라는 걸 밝히고 싶었어. 찾아 보니까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에 원작이라고 볼 수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과 세익스피어보다 400년 앞선, 12세기에 적혀진 페르시아 시인인 니자미 간자비가 쓴 <레일리와 메즈눈> 작품이 있는 거야. 이 세 작품을 엮어 작품의 similarity 를 이야기하고 보여주면 '그 작품과 작가가 유일하지 않았구나. 이런 '이야기'라는 것은 언제나 변화했고 travel 했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우리가 이 이야기는 누구의 것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구나.'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대에서는 이름 그러니까 copywrite를 붙이는 거가 어떻게 변화해 나가고 있는지 생각 했을 때 chat gpt를 떠올렸거든. 익명의 어떤 데이터들을 많이 끌어모아 알고리즘으로 chat gpt가 나에게 objective한 것처럼 answer를 주잖아. 그곳에 '작가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되게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러면 세익스피어, 니자미 간자비, 오비디우스의 신화 그리고 chat gpt 까지 이렇게 넷을 한번 살펴보고자 출발을 했어.
로미와 줄리엣의 발코니 씬이 진짜 유명해. 로미오가 줄리엣의 창가에 도착을 해서 "너를 사랑해." 라는 말을 하는데 이 장면에 이런 대사가 많아. ‘로미오 왜 당신은 캐플렛이에요. 캐플렛이라는 성을 버리면 내가 당신을 사랑해 줄 수 있어요.’ 라든지 아니면 ‘이름에 뭐가 들어 있지? 장미가 장미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았어도 달콤한 향기를 가질 거야.‘ 어쩌면 이 장면에서 이름에 대해 포커스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왜냐하면 내가 얘기하고자 하고 있는 것들이 세익스피어가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과정 혹은 니자미 간자비와 신화의 이름이 없어지는 과정 등 이름이라는 분야로 이거를 다 통용을 할 수 있겠더라고.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유모는 이름이 없어. 그 캐릭터들이 이름표라는 어떤 상징적인 오브제를 가지고 이 배우들이 각각의 장면에 있다가 자기 이름을 찾는 과정을 극으로 만들고자 했어.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고 이름표에 이름을 써서 비추어주는 과정이 함께 이렇게 있으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을 이제 꾸렸어. 배우들의 가슴팍에 이름표가 있고, 처음엔 배우들이 영어로 대사를 하며 로미오, 줄리엣 시작을 해. 다음 장면에서는 로미로와 줄리엣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로미오가 피라모스가 되고 줄리엣이 티스베가 돼. 그 다음 장면에서는 또 이름표를 떼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피라모스가 magnum이 되고 티스베가 라일라가 돼. 이런 식으로 이름표가 계속 늘어나. 마지막 장면을 건 이 이름표를 던져버리고 배우가 각자 자기 이름을 wear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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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언니는 살면서 채송이라는 이름을 써?

채송: 어려워. 미국에서 채송으로 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왜냐하면 사람들이 절대 발음할 수 없거든. 사실은 체이 소옹 으로 되게 좀 오래 살았고 그것마저도 되게 어려워했어. 근데 지금은 최대한 채송이라고 발음해보라고 하는 편이야. 이런 일이 있다 보니까 더더욱 나는 이름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
관객들이 입장을 하면서 프로젝션을 볼 수 있게 했는데, 내가 chat gpt랑 내 이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거의 1시간가량 뽑아서 프로젝션을 했어. 누구의 이름이 기억이 되고, 누구의 이름이 명성을 가지게 되고, 어떤 이름들이 없어지고, 어떤 이름들은 들려지지 않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얘기할 수 있었던 부분도 아마 나의 이런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물론 민주화 운동 세대들을 지켜보면서 결국에는 뒷전에 잊혀져 버리는 여성 민주화 운동가들의 이름들을 생각할 때 목마름이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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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그러면 chat gpt한테 어떤 질문들을 던졌어?

채송: chat gpt가 객관적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사실은 chat gpt가 많은 데이터를 모았다고 한들 그 많은 데이터들 안에는 분명히 가장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들, 역사 속의 승리자들의 이야기들, 많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들 그리고 그들이 채집하기에 쉬운 곳에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을 해. 그것들을 자신들의 알고리즘을 필터링을 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거기 때문에 이 chat gpt도 현재 기득권들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챗 gpt를 통해서 내가 질문을 했던 것들은 이제 ‘셰익스피어가 왜 중요해?’라든지 ‘세익스피어가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야?’ 라든지 ‘세익스피어에 비해서 이사미 간자비는 왜 유명하지 않아?’ 이런 질문들을 했어. 내가 이것을 하면서 느낀 것는, 하면 할수록 이 아이가 내가 어떤 답을 원하는지를 좀 알더라고.

남영: 신기하다.

채송: 점점 그 답이 조금 덜 기득권의 이야기가 되기는 하던데 나는 그런 식으로 좀 활용을 했던 것 같아. 어쨌든 popular belief 라고 그들이 믿는 어떤 중간 지점을 찾아냈을 거 아니야. 한편으로는 그것과 내가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는 되게 고마웠던 것 같아. 왜냐하면 나는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도 되게 놀랐고, 내가 daily 마주치는 사람들의 어떤 시면에 있는 왜곡된 시선과 그들이 살아온 그런 이야기들 (이런 것들이 밖으로 노출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즉 보통의 이야기가 나에게 대화가 가능한 물체로 주어진다는 거는 되게 감사한 일이었던 것 같아.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거니까 어떤 shadowback boxing을 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화가 나는 것은 똑같아. 화가 나지. 왜 그렇게 생각하니. 왜 셰익스피어만 정말 그들보다 더 뛰어나서 세익스피어만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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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한 3년 4년 전에는 혼자서 하는 퍼포먼스 쪽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연극 연출 쪽으로 넘어온 거잖아.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

채송: 얘기를 풀어보자면 어렸을 때는 마냥 무대와 뮤지컬이 좋았던 것 같아. 사실 어디까지가 춤이고 연극이고 이런 것들에 되게 신물이 나 있었어. 그것들을 정한 것의 기준점이 서양에 있다고 생각을 해서 약간 반발심이 많긴 한데 어쨌든 몸에 대해서 언제나 관심이 많았고 뮤지컬이라는 것은 그 매체 자체가 여러 가지를 많이 섞어놓은 거기 때문에 매력적으로 느꼈어.
대학에 입학하고 내가 간 학교에는 뮤지컬을 하지 않아서 연극, 음악, 춤, 비주얼 이런 것들을 다 따로 공부하게 됐어. 어쩔 수 없이. 그러면서 되게 많은 걸 배웠어. 내가 그 당시에 언어의 장벽이 컸는데, performance art 수업이 있었어. 그러면은 우리는 이제는 이것이 행위 예술이라는 걸 알지만 그 당시에는 '퍼포먼스' 하면 공연이잖아. 공연을 공부하는 건가 보다 하고 이제 신나게 간 거지. 그랬더니 알고 보니까 이제 행위 예술을 막 하고 이런 세상이 있구나를 배우게 되었고 또 music and drama 라는 수업에서는 드디어 musical을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까 오페라를 배웠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겪다 보니까 내가 찾은 제 3의 분야가 있었던 것 같아. 그거를 이제 뭐라 그러더라 다원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운이 좋게도 대안 예술 공간 중 춤에 포커스가 되어 있는 곳에 레지던시를 이제 두 번 할 수 있었고. 그다음에 또 뉴욕의 튜니리 라마마라는 공연 단체랑 협업을 해서 다원 예술과 춤에 포커싱 된 그런 작품들 작품의 과정들 이런 것들을 많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러다 보니까 이제 내 작품의 세계가 좀 많이 바뀐 거지 그리고 특히 학교에서도 이제 체셔 브라운이라든지 아니면 그냥 플럭서스라든지 이런 것들을 막 공부를 하다 보니까 너무 자연스럽게 다원예술 쪽을 하게 됐고 내 몸을 매개로 뭔가를 하는 게 너무 자연스러워졌어. 졸업을 하기 직전에 이제 공연을 몇 개 했는데 그중에 가장 대표적이었던 게 1인극이었던 거고. 그 외에는 사실 앙상블 극을 되게 많이 했었어.
전혀 다른 방향의 갈래로는 내가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어쨌든 운동권 자식이기도 하고 인권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social justice 와 theater 의 상관관계가 되게 궁금했어. 사회적인 임팩트와 공연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찾아 보니까 documantary theater라는 갈래가 있어. 또 완전 다르지. 다원 예술은 오히려 essential 하고 몸에서 기인하고 존재를 고민하고 이런 것들이 되게 많은데, 다큐멘터리티는 past에 기반하고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이런 것들이 많다 보니까 전혀 상반된 것을 동시에 했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대학원에 잘 오게 된 거지 사실 뉴욕에 있고 싶어서 대학원을 지원을 하기도 했고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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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재미있게 얘기했지만 사실 그 안에는 힘든 경험이 많았어. 나는 이주민이고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고 아시아인이고 특히 어린 여성이잖아. 내가 되게 꿈꿨던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양상들, 형태가 non hierarchy making 위계 질서가 없는 것들을 기대하며 퍼포먼스 아트를 하는 집단에 들어갔어. 여기에 가면 분명히 hierarchy가 없어야 되는데 분명히 hierarchy가 있었어. 언제나 내가 항상 피해를 받고 언제나 내가 다치고 언제나 내가 양보를 했어. 어느 날은 부상도 있었어. 나는 심지어 계약서를 안 쓴 거야. 그래서 누구도 나를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 내가 분명히 무용수로 이 작품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고 심지어 그 작품도 그 전날 빠졌는데 춤을 추게 해서 다쳤어. 다쳤는데 계약서를 안 썼으니까 보험이 없었어. 내가 다친 거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 이런 상황을 되게 많이 겪었어. 하나밖에 얘기는 안 했지만. 그러다 보니까 힘을 원했고 특히 창작의 과정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에 대한 고민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너무 존경하는 스승님도 만나고 내가 너무나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무나 가슴 뛰는 작품에도 참여할 수 있었지. 그럼에도 어쨌든 해결되지 않는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 그거를 다른 사람들한테는 힘이라고 얘기를 표현을 하는데, 사실은 외로움이 컸던 것 같아. 그게 이 작품들을 하는 그분들의 생태계가 좁음에서 오는 것들도 있었고 우리의 작품이 아무리 그런 everyday object나 사람들이 일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들 일상적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오히려 되게 엘리트주의적인 벽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그런 것들이 되게 가슴이 아팠dj.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이상적인 앙상블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 어쨌든 약자는 있구나 이런 생각들이 너무 속상했던 것 같아. 그래서 그렇지 않은 방법들과 내가 그렇지 않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다른 기회가 필요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연출이라는 거를 선택을 하게 된 거지. 나는 연극이나 영화나 이런 것들에서 오는 관객을 의자에 앉히는 힘이 너무 간절했어. 그 당시에 나는 그런 퍼포먼스 아트나 installation 도 너무 좋아하고 여전히 그것이 오히려 나한테는 되게 내 본고장 같기도 하고 내가 여전히 가장 큰 영감을 얻고 내 작품이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인데, 그럼에도 어쨌든 누군가가 이거의 다음 장면이 너무나 궁금해지고 이 다음 장면이 너무나 그 전 장면 때문이고 이런 것들이 너무 간절했어. 그래서 그것을 연극에서 찾아야겠다라고 결심을 했던 것 같아. 너무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렇게 됐네.(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되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답은 되게 두루뭉술하게 얻은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남영: 관객을 앉힌다는 거가 무대가 필요했던 거야? 아니면 언니가 만든 어떤 것들을 보고 나서 바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거야?

채송: 나는 후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 사실 공연이 갤러리에 있든 공연장에 있든 무슨 상관이야. 내가 원했던 건 관객들이 이런 거 하고 있구나, 이런 shape 이구나, 이런 메시지를 넣었네 하고 그냥 지나치는 거 말고 이 이야기가 궁금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고 그 이후에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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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언니가 인스타에 올렸던 그림자극이 나한테 이미지가 예쁘게 다가왔어. 사진에서 인물들의 행위가 공격과 방어의 액션처럼 보이는데, 어떤 작업이야?

채송: 작품의 title 은 “I’ve never planned to be on this earth long” 이라는 작품이야. 해석하자면 "나는 이 지구에 오래 머무를 계획은 아니었어" 이런 느낌인것 같은데.

남영: 소설 제목 같다.

채송: 응 맞아. 극 작가가 폴 디비엔이라는 중국계 작가고 그 친구가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엮은 모음집이었는데 그 글들이 형태가 되게 다양했어. 시도 있었고 다이얼로그도 있었고. 난 이 작가가 되게 궁금했던 지점이 있었어. 극작가라는 직업은 스크립트만이 완성본이 아니라고 평가받아. 그러니까 글을 영화든 연극으로 올려야지 완성이 되는 거지. 이 극작가는 자신이 쓴 그 script자체 그러니까 그 종이에 인쇄된 그 모양과 이런 것들까지 모두 그냥 완성된 예술이고 싶어 했어. 두 번째로는 이렇게 다양해 보이지만 어쨌든 자기의 이야기였어. 굉장히 당사자성이 큰 그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보편성을 찾고 싶어 했어. 이런 것들을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인스톨레이션 작품이 더 맞을까 비디오가 나을까 이런 얘기도 했었는데 결국에는 공연이라는 매개를 쓰게 됐어. 남영이 봤던 이미지와 같이 종이를 센터에 두게 됐고 이걸로 던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활용을 했어. 배우 6명을 데리고 이 다양한 글들에 어느 정도의 연결성을 가져가되 완전히 이야기적이지는 않고 글만으로 완성된 예술을 하고 싶었던 그 의지를 담았어. 분명히 극이지만 picture 자체, 그림으로서도 완성도를 가질 수 있는 것들에 고민을 많이 했던 작품이었어. 이 종이에 조명을 치고 나니까 그림자로 얘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야. 그래서 그림자를 쓰게 됐어. 대학교를 다닐 때 shadow puppet play이라고 그림자 인형을 처음 배웠고, 이제 라마마에 가서도 puppet play 인형극을 배웠어. 갑자기 인형을 데려올 수는 없으니까 신체로 이거를 표현을 해야 겠다는 얘기를 해서 여러 장면들에서 이제 그림자로 표현을 했어. 어떤 장면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야기 이 극 작가의 글도 자기의 훌륭한 experiance 지만 보편성을 찾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극 작가가 말들 이런 것들을 좀 표현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이 사람이 화자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을 이야기할 수 있게 그림자를 쓰기도 했고
너가 포인트 아웃 한 장면은 되게 nightmare 같지만 사실은 실제로 있던 대화 내용을 표현을 한 장면이야. 그것을 내가 정말 대화로 풀기가 너무나 폭력적인 대화였어서 다른 배우들을 이제 종이 뒤에 이제 배치를 해서 신체로서 다른 상대 배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좀 리허설을 해서 나온 장면이야. 그래서 그 장면은 그렇게 읽는 게 맞아.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남영: 그러면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대사를 하고 말을 하고 뒤에 있는 사람들은 행위를 하는 그런 방식을 가진 거야? 채송: 사실 뒤에 있는 사람들도 말을 하긴 했어. 근데 나는 어쨌든 주체를 통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memory를 반복재생을 하는, 기억을 회귀하는 그런 형태를 풀다 보니까 그들을 뒤에 놓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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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에너지에 대해 앞에서 말을 해주긴 했는데 혹시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연극의 어떤 지점에서 에너지를 얻어?

채송: 공동체랑 소통하고 이런 것들에서 에너지를 많이 얻는데, 내가 좀 add 하고 싶은 부분은 대학교에서 되게 힘들었다고 얘기를 했잖아. 대학원에서도 연극과 연극이라는 틀 안에서 struggle을 많이 했어. 나는 이러한 틀 자체도 서구에서 온 시각이라고 생각해. 우리나라에서는 판소리는 이야기를 하면서 노래도 하고, 춤을 추며 사회를 풍자하잖아.
'이것을 연극이야. 이것은 춤이야.' 이렇게 나누는 게 나는 되게 편협한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을 해. 그러다 보니까 내가 오류를 범했던 게 그 틀을 만든 주체와 그 틀에 대해서 반발을 하면 되는데 이야기 자체 그리고 structure 드라마, 그러니까 한국 드라마 말고 드라마라고 하는 구조 자체를 되게 폭력적이라고 얘기했던 때가 있었어. 근데 현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효과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지금은 이야기가 재미있어.

남영: 그럼 언니가 처음에는 연극의 그런 형식들을 해체를 하고 싫어하거나 지금은 크게 개의치 않는, 그냥 언니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떤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말인거야?

채송: 맞아. 정확해. 그래서 사실 나는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사람들의 메시지 그리고 어떤 콘텐츠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하지 그게 연극이고 영화고 공연이고 퍼포먼스고 춤이고 이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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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좋아하는 작가 있어?

채송: 응. Cecilia Vicuña 라는 작가야. 가장 최근에는 뉴욕의 구겐하임랑 런던의 테이트에서 전시를 하셨어. '키푸'라고 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언어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매듭을 쓰는 기록 방식이 있었어. 이 기록 방식이 colonization, 식민 개척에 의해서 많이 불타고 훼손되고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이 없어지고 그랬어. 이분은 키푸라는 전통의 방식을 기억 하시면서 여러 가지 organization, 천, 동물의 뼈 등 다양한 재료들로 거대한 조형물을 만드시는 분이야. 조형물뿐만 아니라 그 조형물을 만드는 과정을 비디오로 쓰시기도 하고 공연을 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하셔. 그림도 그리시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intergenerational trauma (세대 갈등)에 대해 얘기했잖아. 그런 것들과 colonization 식민주의에 대해서 굉장히 울림이 있게 작업을 하신다고 생각했어.
내 작품 중에도 붉은 실과 붉은 천을 쓰는 작품이 있어. 이 작품도 식민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었어. 이 분의 전시를 보러 갔는데 그걸 보고 '정말 나는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관객으로서는 정말 감사해.

남영: 한번 찾아볼게.

봤으면 좋겠어. 근데 정말 사진으로 전해지는 방송이 내가 가서 봤던 거랑 좀 비교가 안 될 것 같긴 해. 왜냐하면 그 안에 정말 들어가면 hunting 같은 느낌이었고 나는 식민지화를 겪은 사람 그 느낌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커다란 위안이 되기도 했어. 여러모로 exciting한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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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내가 노혜리 작가의 thirty thousand dollarsla-sung 두 개의 영상 링크를 보냈었잖아. 혹시 봤어?

채송: 응! 봤지. 너무 재밌게 잘 봤어. 나는 아무래도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특히 영어나 한국말이나 섞어서 하는 게 편한 사람으로서 되게 공감되는 부분들이 되게 많았어. 오브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오브제가 내가(작가가) 건드림으로 인해서 변화하잖아. 변화된 환경은 어쨌든 나의 흔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서 오는 위안이 있었어. 왜냐하면 특히 뉴욕에서는 나라는 존재가 굉장히 작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 같거든. 내가 뭔가를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많아. 이분은 자신이 자세를 낮추고 계속해서 주위를 빙빙 돌며 이야기를 하고 또 오브제 중에 Car wheel 처럼 생기지는 않았지만 나의 행위를 통해서 car wheel이 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나로 인해서 있는 환경이 나의 가치를 기록해 준다는 점이 되게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점에서 되게 감사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

남영: 나도 오브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예를 들어서 컵은 컵이고 책은 책이고 등 우리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사물들이 그렇잖아. 언니가 말한 것처럼 오브제가 행위에 의해 운전대가 되기도 하다가 전화기가 되기도 하는 방식이 하나가 1대 1의 관계가 아니라 1대 다수를 지칭할 수 있는 것들로 느껴져서 되게 재밌었어. 또한 이분이 한국어랑 영어를 쓰는 방식이 살짝 숨기고 싶은 얘기는 영어로 하기도 하고 뭔가 좀 드러내고 싶은 부분들은 한국어로 얘기를 하는 지점들이 나한테는 굉장히 재밌게 다가왔어.

채송: 그렇구나. 나는 근데 또 그런 생각도 했어. 이게 여러 가지가 될 수도 있지만,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어떤 환경을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이 만들었잖아. 얼마나 자신의 몸과 존재를 온전히 뉘일 곳이 없었으면 자신의 환경을 만드셨을까. 이런 거에 대한 큰 안타까움과 짠함도 되게 주제 넘게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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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언니는 비슷한 환경이어서 더 그런 것이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언어를 써왔던 언니에게 있어서 한국어와 영어는 어떤 의미를 가져? 미국에서 활동을 할 때 작업에서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쓴 적도 있었어?

채송: 그럴 수 있지. 맞아. 나도 그 dear mom과 다른 작품들에서 한국어를 썼었어. 한국어와 영어를 쓰는 거에 대해서 처음에는 '나의 identity와 나의 존재를 한 언어로만 표현할 수 없다.'라는 점에서 출발을 하기도 했었지만 동시에 내가 누구한테 지금 내가 어떤 관객한테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을 나에게 주기도 했어. 나아가서는 ‘어, 너 못 알아듣지. 하지만 넌 듣고 있어. 넌 관객석에 앉아 있어야만 할 거야.’라는 그런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알아듣지 못할 언어를 사용을 하기도 했고.
아까 말한 'ROMEO & JULIET & LAYLA & MAJNUN' 작업에서 영어 외에 힌디 라틴 등 네 가지 언어가 더 있었거든. 그 언어들을 못 알아듣는 관객이 훨씬 많잖아. 나도 몰라 상대 배우들도 모를 때도 많고. 그랬을 때 '그게 어떤 소통인가? 소통은 꼭 의미 전달로만 가능한가?' 그런 것들에 대한 질문을 좀 하는 편이야.
사실 나는 팔꿈치가 영어로 가끔 생각이 안 나. 대신에 내가 전문적인 과정은 영어로 배웠기 때문에 bones와 관련된 세부 뼈들은 한국말로는 몰라. 그런 것들이 있어. 그리고 한국말로 표현할 수 없는 what’s up 이라는 표현이라든지 아니면 영어로 표현할 수 없는 '밥 먹었어?' 이런 것들이 너무나 혼재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의 리듬이 재미있어서 작품에 쓴 부분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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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 맞아 그리고 그리고 아마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 내가 내 작업을 보내줬잖아.

채송: 네가 여러 표현 방식을 취하는 것이 되게 재밌고 좀 이미지적으로도 이게 네가 두꺼비로서 얘기를 할 거예요 라고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두껍아 두껍아 얘기를 부르잖아. 그러면서 이미지를 우리 머릿속에 심어주고 그리고 또 분명히 움직임도 그러하지만 그러고 나서 너의 몸으로써 그것들을 표현을 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심상이나 언어적인 심상 혹은 멜로디에서 나온 심상 아니면 이미지의 심상 이런 것들이 점점 겹쳐지고 clear 가는 것이 되게 재미있었고 그리고 그 이미지 하나하나도 정말 너무 아름답고 되게 어쩜 이렇게 개구리였다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거를 쓰는데 손가락이 딱 조명이 딱 맞게 이렇게 알맞게 해놓고. 조명을 움직이면서 또 배경을 바꾸고 그 배경이 바뀌면서 그림자가 진 그것에 대한 어떤 인터렉션도 하고 아무 의미도 아닌 것 같았는데 그 비닐이라고 해야 되나 Plastic 뒤에 가서 또 어떤 이야기가 전해지고 어떤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고 어떤 것들은 멀리 있고 이런 것들을 활용했다는 게 나는 되게 정말 똑똑한 퍼포머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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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

에너지

공동체

shadow memory

승리자의 이야기

이름들

anger

춤에서 연출까지

Non hierarchy making

붉은 천으로 기록하기

structure-struggle

흔적의 위안

what's up, 밥먹었어?

세익스피어의 copywrite

changing body

채송과 남영 채송과 남영은 서로의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인연으로, 남영이 초등학생 때 채송이 영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채송은 뉴욕에서 연극 연출을 하고 있고 남영은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다.
채송의 요즘 2년만에 줌으로 만난 채송과 남영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채송의 작업 남영은 채송이 연출한 두 개의 연극에 대해 질문을 했다.
"ROMEO & JULIET & LAYLA & MAJNUN"
"I've never planned to be on this earth long"
채송의 길 어떻게 채송은 연극 연출을 하게 되었을까? Cecilia Vicuña 채송이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 혜리작가와 채송 남영은 채송에게 노혜리 작가의 "la-sung"과 "thirty thousand dollars" 퍼포먼스 영상을 보냈다.
노혜리 작가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두가지 언어를 쓰며 살아왔고 이러한 삶의 방식이 작업에 크게 반영이 된다. 어릴 적부터 두 가지 언어를 쓰고 지금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채송과 닮아있는 지점이 보여 작업을 본 후 이야기를 나눴다.
남영의 작업 남영의 작업인 "카모플라주" 퍼포먼스영상을
본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